골목의 층위
신당동 골목을 걷는다는 것은 여러 시간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다. 냄새, 소리, 빛이 시간마다 다르게 층을 이룬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신당동 중앙시장



이 골목은 이름조차 여러 번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청구역 주변을 앵구동, 곧 벚나무언덕마을이라 불렀고, 신당6동은 문화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지명이 바뀔 때마다 그 자리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도 조금씩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의 신당동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그렇게 여러 겹의 옛 이름들이 겹쳐 있다.
신당동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냄새가 먼저 온다. 한 가지 냄새가 아니다. 겹쳐진 냄새다. 참나무 숯불의 은은한 향이 있고, 그 위에 고소한 참기름 내음이 떠 있다. 그리고 더 위에는 달콤한 카페 냄새가 겹쳐 있다.
이 냄새들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 각각 자기 층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골목 안쪽일수록 숯불 향이 짙어지고, 밖에 가까울수록 카페 냄새가 진해진다. 시장의 향은 어디나 깔려 있다. 계절 내내 그것은 변하지 않는 바탕이다.
냄새가 가장 먼저 도착한다면, 소리는 그 다음이다. 냄새는 멀리서부터 스며들지만, 소리는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비로소 들린다. 두 감각이 도착하는 순서가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이 골목을 걷는 경험을 층층이 쌓아 올린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새로운 층이 열리는 셈이다.
소리의 깊이
골목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많은 사람이 있지만, 시끄럽지 않다. 방문 기록들이 '활기차지만 조용하다'고 반복해 말하는 이유다. 여러 소리가 겹쳐서 그럴 수도 있다. 주방에서 나오는 소리, 사람들의 잔잔한 대화, 가끔 웃음소리.
이른 아침의 신당동은 상인들이 좌판을 정리하는 소리로 시작된다. 상자를 내려놓는 소리, 물건을 진열하는 소리가 골목의 하루를 여는 신호다. 오후가 되면 그 위로 손님들의 발걸음과 대화가 겹쳐진다.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소리의 총량은 늘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없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계류관에 들어가면 직원분들이 숯불에서 직접 통닭을 구워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때 나오는 소리가 있다. 불이 튀면서 내는 소리, 고기가 뒤집혀질 때의 소리. 이 소리는 음식이 익어가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소리가 맛의 일부가 되는 경험이다.
라까예에 들어가면 웨이팅을 해야 한다. 그 대기 시간에도 소리가 변한다. 밖은 일반적인 시장 소리인데,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주방 소리가 커진다. 오픈 키친이라서 그렇다. 소리 자체가 대기 시간의 일부다.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도 이 소리의 층에 섞여 있다. 물건을 파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듯 안부를 묻는 소리. 그 위로 카페 안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이 겹친다. 어느 하나도 튀지 않고, 서로의 부피를 조금씩 양보하며 골목의 배경음을 이룬다.


빛의 변화
낮의 신당동은 시장의 빛이다. 가건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불규칙하게 흩어진다. 상점의 전등들이 켜져 있지만, 햇빛 때문에 그것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밝지만 어둡고, 정확하지만 어수선한 빛이다.
정오 무렵의 빛은 가장 애매하다. 아침의 부드러움도, 저녁의 따뜻함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다.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시간이라, 골목의 굴곡도 평평해 보인다. 이 애매함이 오히려 골목의 민낯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 꾸며지지 않은 시장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저녁이 되면 변한다. 카페들의 따뜻한 조명이 살아나고, 계류관의 숯불이 더 선명해진다. 날이 지면서 골목의 빛은 점점 인공적이 된다. 하지만 숯불의 주황색은 어느 때든 살아 있다. 그 빛이 밤의 골목을 지배한다.
빛의 출처가 다양할수록, 공간은 더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신당동은 그 복잡함이 자연스럽다. 옛 시장의 하얀 형광등과 새로운 카페의 따뜻한 조명이 같은 골목에서 공존한다. 그것이 이 골목이 두 시대를 동시에 담고 있다는 증거다.
이 골목에서 빛은 시간을 알리는 신호와 같다. 굳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지금 켜진 조명의 색과 세기만으로 몇 시쯤인지 가늠할 수 있다. 오래 이 골목을 드나든 사람이라면 그 감각을 몸으로 익혔을 것이다.
질감의 층
촉감은 가장 늦게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냄새와 소리와 빛은 걷는 동안 저절로 들어오지만, 질감은 손을 뻗거나 발을 디뎌야 비로소 확인된다. 그래서 이 골목의 질감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더 오래 머물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골목을 걷는 발의 감각도 변한다. 시장 부분의 포장도로는 딱딱하고, 마모되어 있다. 몇십 년을 많은 사람이 밟아서 그렇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카페나 식당 앞은 깔끔하다. 다시 포장된 곳들이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그 미묘한 단차만으로도, 지금 어느 시절의 바닥을 밟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질감이 더 다양해진다. 라까예의 메뉴가 나올 때의 질감을 생각해보자. 접시가 따뜻하고, 소곱창은 쫄깃하다. 타코의 토르티야는 부드럽다. 한 입 안에 여러 질감이 들어온다. 씹을 때마다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번갈아 나타나고, 그 리듬이 한 끼 식사를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계류관에서 숯불에서 나온 닭을 집어 들 때의 느낌은 어떨까. 겉은 바삭하고 안은 부드럽다. 그 대조가 한 숟가락 안에 일어난다. 질감은 음식의 맛을 강화한다.
시장 좌판의 나무 상자와 스테인리스 그릇은 손에 닿으면 차갑고 단단하다. 반면 새로 생긴 카페의 나무 테이블은 매끈하고 따뜻하다. 같은 골목 안에서 손끝으로 느끼는 온도조차 이렇게 갈린다. 그 차이를 넘나드는 것이 이 골목을 걷는 재미이기도 하다.


감각이 만드는 시간
신당동을 경험한다는 것은 결국 여러 시간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다. 1980년대의 시끄러운 에너지와 현재의 조용한 감성이 냄새로는 동시에 들어온다. 빛으로는 시장의 하얀 형광등과 카페의 따뜻한 불빛이 겹친다.
맛은 어떨까. 떡볶이의 매운맛과 타코의 신맛, 닭의 고소함이 같은 골목에서 경험된다. 하나를 먹으러 오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이 모든 감각이 섞인 경험을 찾는 것 아닐까.
소리도 마찬가지다. 시장 상인의 걸걸한 목소리와 카페 안의 낮은 대화, 숯불이 튀는 소리와 커피 머신이 내리는 소리가 한 골목 안에서 번갈아 들린다. 감각은 저마다 다른 시간에서 왔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모두 함께 존재한다.
신당동 골목을 걷는다는 것은 그래서 복잡하다. 각각의 가게는 자기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골목은 그 모든 시간을 한 공간 안에 담는다. 냄새와 소리, 빛과 질감이 겹쳐서 만드는 층이 있다. 그것이 이 골목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다.
결국 이 골목을 층위로 읽는다는 것은, 겹쳐진 시간을 하나씩 벗겨내는 일이 아니라 그 겹침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신당동은 어느 한 시절로 정리되지 않는다. 냄새와 소리와 빛과 질감이 뒤섞인 채로, 지금도 계속 겹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