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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돌에서 천으로, 손에서 손으로

서울을 지은 화강암이 나온 채석장 자리에, 이제 사람들이 옷감을 자르고 바느질한다. 흙에서 나온 것과 손으로 만든 것 사이의 긴 전환.

alleymag.
발행
2026.09.08
골목
창신동 문구완구거리
돌에서 천으로, 손에서 손으로
사진 rmkimhs
SCENE 01 : 돌과 천이 만나는 동네
▲ 2026.08 / 사진 rmkimhs · https://blog.naver.com/rmkimhs/224371361699 완구거리 골목의 인쇄소 흔적과 오래된 간판입니다. 작성자: rmkimhs

창신동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14년 행정구역을 다시 그릴 때, 인창방에서 '창'을, 숭신방에서 '신'을 따서 지었다는 말이 전한다. 두 동네의 이름을 반반씩 섞어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 동네의 진짜 이름은 그 이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창신동과 옆 숭인동 일대는 채석장이었다. 서울을 지을 때 필요한 화강암을 캐내던 자리였다. 1924년에는 경성부 직영 채석장으로 지정될 만큼 그 규모가 컸다. 여기서 캐낸 돌로 한국은행 건물을 세웠고, 서울역을 지었고, 조선총독부를 세웠다.

도시는 그 도시를 지은 손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지 않는다. 어떤 돌이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다. 건물만 남고 채석장은 잊혀진다. 하지만 창신동은 다르다. 이 동네의 땅 위에는 채석장이 만든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채석장에서 돌을 캐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이 남지 않았다. 그들이 캐낸 돌이 어느 건물의 어느 벽이 되었는지도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그 돌이 만든 도시가 지금도 서 있을 뿐이다. 창신동이라는 이름 하나가, 그 이름 없는 손들의 유일한 흔적인 셈이다. 흙과 돌을 다루던 노동이 남긴 것은 기념비가 아니라, 지형 그 자체다.

절개지가 만든 언덕

이 언덕 꼭대기에 서면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이 방금 밟고 올라온 오르막이 얼마나 가팔랐는지, 그 풍경을 보고서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돌을 캐는 이들의 손끝에는 늘 흙먼지가 앉아 있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망치질을 반복한 팔은 남들보다 굵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그 손을 가진 사람도, 그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이 언덕의 경사가, 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여전히 증언하고 있다.

지금도 이 언덕을 걷다 보면 발밑으로 전해지는 경사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도시의 다른 골목과는 다른 각도로 땅이 기울어 있다. 자연스럽게 생긴 언덕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깎여 나간 자리라는 사실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듯하다.

돌을 계속 캐내다 보면 깎아지른 절벽이 생긴다. 창신동의 가파른 언덕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채석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지형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지난 뒤, 그 절개지 옆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땅이 없는 사람들이 경사진 땅에 토막집을 짓고 사는 일이 시작되었다.

1960년대가 되면서 이 동네는 달라졌다. 작은 규모의 봉제공장들이 수없이 들어섰다. 왜 하필 창신동이었을까. 아마도 싼 임차료와 나쁘지 않은 교통이라는 단순한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들어온 공장들은 오래 머물렀다. 1970년대에는 삼천여 개의 봉제공장이 이 동네를 메웠다고 한다.

돌을 캐던 자리에 옷을 짓는 손이 들어선 것은 우연에 가깝다. 하지만 두 노동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몸을 써서 무언가를 서울에 공급하는 일이었다. 돌은 건물이 되어 도시의 뼈대를 세웠고, 옷은 사람의 몸을 감싸며 도시의 일상을 채웠다. 창신동은 그렇게 두 번, 서울이라는 도시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을 만들어 보낸 동네다.

SCENE 02 : 절개지 전망대에서 본 현재
▲ 서울 종로구 종로52길 · 2026.09 / 사진 sys1687 · https://blog.naver.com/sys1687/224398389433 절개지를 깎아내며 남겨진 가파른 절벽 위에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채석장의 흔적이 지형이 되어 남은 창신동의 모습. 이 경사 위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던 사람들의 노동이 이 동네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손으로 만드는 일이 들어온 자리

동대문의 의류 산업이 번성할 때, 창신동은 그 산업의 심장이었다. 원단을 자르고, 바느질하고, 마무리하는 모든 일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가늘고 손가락만 한 바늘이 수도 없이 오가며 옷을 만들어 냈다. 서울의 옷장을 채운 것이 창신동의 손이었다.

봉제공장 안에서는 하루 종일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원단을 재단하는 가위질 소리, 실이 감기는 소리, 완성된 옷을 개는 소리가 겹쳐졌다. 그 소리들이 겹겹이 쌓여 이 골목의 낮을 채웠다. 지금도 몇몇 공장에서는 그 소리가 여전히 들린다. 다만 예전만큼 여러 겹으로 겹쳐지지는 않는다.

채석장에서는 신체의 무게를 실어 돌을 캤다면, 봉제공장에서는 신체의 소세움을 필요로 했다. 같은 땅 위에서, 한 세대 차이로 완전히 다른 일이 이루어졌다. 돌에서 천으로. 채석의 손에서 바느질의 손으로. 창신동은 서울을 짓는 과정 자체를 몸으로 겪어낸 동네다.

그 바늘을 쥔 손의 주인은 대개 나이가 많다. 젊은 사람들은 이 일을 새로 배우려 하지 않는다. 기술은 남았지만 그 기술을 이어받을 다음 손이 마땅치 않다. 창신동이 마주한 진짜 어려움은 어쩌면 산업의 쇠퇴가 아니라, 이 대물림의 끊김일지도 모른다.

돌을 캐는 손과 바늘을 쥐는 손은 다르게 단련된다. 전자는 무게를 견디는 손이고, 후자는 정교함을 요구하는 손이다. 하지만 두 손 모두 하루 종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만들어진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몸에 새겨진 반복의 흔적, 그것이 이 언덕이 세대를 거쳐 물려준 진짜 유산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동네에는 천여 개의 봉제공장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예전의 삼분의 일도 안 된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아침을 열고 바늘을 들고, 옷을 만들고 있다.

SCENE 03 : 마주보는 두 손의 기억
▲ 서울 종로구 종로52길 · 2026.08 / 사진 euni8407 · https://blog.naver.com/euni8407/224395388937 창신동 완구거리의 매장 진열. 천장부터 바닥까지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 찬 공간. 이 동네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첫 인상은 이 압도적인 높이와 밀도다. 손으로 만들던 시절에서 완구를 파는 시대로 변해온 이 땅의 에너지를 반영한다.

사라진 것과 남은 것

창신동은 공장 노동의 흥성기와 쇠퇴기를 동시에 담고 있다. 산업이 떠났을 때도 있고, 사람이 떠났을 때도 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다만 작아질 뿐이었다.

완구거리를 걷는 오후에는 다른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부모들의 대화, 상자를 여닫는 소리. 봉제공장의 낮은 기계음과는 다른 결의 활기다. 하지만 그 활기도 결국 이 언덕이 오랫동안 품어온 노동의 연장선 위에 있다.

완구 도매점의 진열장 앞에 서면 어릴 적 갖고 싶었던 장난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시절과 똑같은 모양의 물건도 있고, 조금씩 달라진 물건도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과 시간이 흘렀다는 실감이 동시에 든다. 이 골목이 사람들에게 주는 감정은 그렇게 이중적이다.

이제 이 동네는 또 다른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옷을 만드는 손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 문구와 완구가 들어오고 있다. 동대문의 산업이 바뀌고 있고, 창신동도 함께 바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만드는 손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돌에서 천으로, 천에서 다시 알록달록한 완구로. 창신동이 몸에 새겨 온 세 번째 변화다. 이 변화는 이전 두 번처럼 극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여전히 같은 흐름이 있다. 서울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이 가파른 언덕 위에서 계속 만들어 내보낸다는 것. 창신동은 그렇게, 이름이 바뀌지 않은 채로 몇 번이고 다른 얼굴을 보여 온 동네다.

SCENE 04 : 문구완구거리의 얼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2길 36 (창신동) / 사진 공공누리 한국관광공사 ·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1187220 왼쪽은 종로52길 초입, 레고 전문점 앞에 세워진 대형 곰 조형물. 오른쪽은 축구공과 장난감이 상자째 진열된 도매 거리 풍경으로, 완구·문구 가게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다.
창신동의 지명 유래와 채석장, 봉제공장의 역사는 공개된 행정 자료와 지역 기록에 따른 것이다. 채석장에서 케낸 화강암이 사용된 건물들과 봉제공장의 규모는 역사 자료에 따른 것이다. 동네의 현재 모습과 남은 공장의 활동은 2026년 여름과 초가을에 확인한 방문 기록에서 반복해 나타난 서술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창신동종로구채석장봉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