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이 박스가 있던 시간
1953년에 시작된 떡볶이. 1970년대 후반에 모여 골목을 이뤘다. 1980년대에는 디제이 박스가 있었고, 사연과 함께 음악을 틀어주는 사람이 이 골목의 상징이었다. 팔십년대의 젊음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신당동 중앙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간판들이다. 오래된 떡볶이 집의 손글씨 간판과 새로 생긴 카페의 심플한 로고가 나란히 걸려 있다. 그 사이를 걷다 보면 이 골목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켜켜이 쌓아왔는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지금 여기 서 있는 사람들은 그 시간의 가장 최근 한 겹일 뿐이다.
신당동 떡볶이는 1953년 마복림이라는 사람이 문을 연 가게에서 시작되었다. 그 가게에서 즉석떡볶이가 처음 널리 퍼졌고, 먹는 방식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손으로 집어 먹고, 그 과정에서 옆 사람과 부딪혔다. 부딪히고 나누고 웃는 과정이 이 음식의 본질이 되었다.
마복림이 즉석떡볶이를 처음 내놓았을 때, 그것은 그저 매콤한 간식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좁은 상 위에 여럿이 둘러앉아 함께 냄비를 젓는 방식 자체가 낯설었다. 혼자 먹는 음식이 아니라 나눠 먹는 음식이라는 감각이 그때 이미 자리를 잡았다.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번졌고, 옆 가게들도 하나둘 같은 방식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떡볶이 가게가 모여 골목을 이룬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10년이 흐르면서 1980년대가 되자 이 골목이 가장 젊은 곳이 되었다. 근처 동대문야구장에서 덕수상고와 선린상고가 맞붙는 날이면, 경기가 끝난 뒤 학생들로 골목이 넘쳤다.
야구가 끝난 저녁,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무리 지어 골목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승부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채로 자리에 앉으면, 그 열기가 고스란히 골목 전체로 옮아갔다. 좁은 상 사이로 이야기 소리가 넘쳤고, 그 소란스러움이 오히려 이 골목을 찾는 이유가 되었다. 조용한 가게였다면 아무도 이곳을 특별하게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디제이 박스의 역할
1980년대 신당동 떡볶이 집마다 디제이 박스가 있었다. 지금의 지니, 멜론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였다. 그 사람은 손님들의 사연을 받았다. 소개팅 신청, 고백 인사, 졸업 추도, 입대 축하. 모든 것이 음악과 함께였다.
디제이는 그 사연에 맞는 노래를 틀어주었다. 사연과 음악이 맞아떨어질 때, 골목의 열정이 한 번에 튀어나왔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누군가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이것이 이 골목을 만들었다. 시끄럽지 않은 곳에서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음악과 함께 누군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경험.
사연은 다양했다. 짝사랑하던 사람 이름을 몰래 적어 낸 쪽지도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온 생일 축하 사연도 있었다. 디제이 박스에 앉은 사람은 그 손글씨를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었다.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 자리에 앉은 누군가의 얼굴이 붉어졌다. 노래가 시작되면 그 부끄러움은 곧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옆 테이블 손님들도 함께 손뼉을 쳤다.
디제이 박스는 대개 가게 한쪽 구석, 손님들이 훤히 볼 수 있는 자리에 놓여 있었다. 작은 스피커와 마이크, 그리고 손님들이 적어 낸 쪽지를 쌓아 두는 상자 하나. 화려한 장비는 아니었지만, 그 작은 자리가 골목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했다. 디제이가 어떤 노래를 고르느냐에 따라 그날 저녁의 공기가 달라졌다.
떡볶이는 먹으러 가는 게 아니었다. 만나러 가는 곳이었다. 먹는 것도 있었지만, 누군가의 사연을 듣고, 그것이 음악이 되어 나오는 과정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것이 이 골목의 정체성이었다.
그러니 이 골목에서 음식과 사람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떡볶이 한 접시를 시키는 것은 곧 그 공간의 방식에 참여하겠다는 뜻이었다. 냄비가 끓는 동안 누군가의 사연이 소개되고, 그 사연에 어울리는 노래가 흐르고, 낯선 사람들끼리도 잠깐은 한마음이 되었다. 이 골목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결국 그 짧은 순간들이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젊어지는 중
1980년대 이후 이 골목은 점점 조용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옛날 떡볶이는 역사가 되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무언가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 타코, 장작구이 닭, 제주 안주.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
타코 가게 앞에는 젊은 손님들이 줄을 서고, 장작구이 닭집에서는 연기가 골목으로 퍼진다. 제주 안주를 파는 포차는 저녁이 되어야 문을 연다. 업종은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시장이라는 낡은 틀 안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그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계속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이 골목의 재주다.
간판의 글씨체부터 달라졌다. 예전에는 손으로 눌러 쓴 듯한 떡볶이 집 간판이 골목을 채웠다면, 지금은 깔끔한 글씨의 새 간판들이 그 사이에 섞여 있다. 저녁이 되면 두 시대의 조명이 동시에 켜진다. 오래된 가게의 백열등과 새 가게의 은은한 간접 조명이 나란히 골목을 밝힌다. 그 불빛 아래로 사람들이 여전히 줄지어 들어선다.
생방송투데이 같은 방송에 소개되고, 웨이팅이 생기고 있다. 1980년대에는 사연이 음악이 되던 골목이었다면, 지금은 음식이 화제가 되는 골목이 되고 있다. 디제이 박스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다. 같은 목적은 아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누군가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것을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을 부르는 방식으로.
신당동 중앙시장은 두 번 젊어졌다. 한 번은 팔십년대에, 디제이 박스와 함께. 또 한 번은 지금, 화제의 음식과 함께. 사연과 음악에서 음식과 경험으로 바뀌었지만, 사람을 부르는 방식은 여전히 같다. 이 골목에 와야 할 이유를 자꾸만 만들어낸다.
달라진 것은 사람들이 손에 쥔 것뿐이다. 팔십년대에는 사연을 적은 쪽지를 건넸다면, 지금은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다. 방식은 바뀌었지만 목적은 같다. 누군가에게 이 순간을 전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이 골목을 오래도록 움직여 온 힘이다.


계속 불려나가는 곳
지금 신당동에 오는 사람들의 사연은 따로 말해지지 않는다. 대신 사진이 찍힌다. 동영상이 올라간다. 누군가의 경험이 SNS를 통해 퍼지고,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곳을 찾는다. 디제이 박스 시대의 입소문이 알고리즘으로 바뀌었을 뿐, 기본은 같다.
사람을 부르는 방식이 계속 바뀌고 있다. 사연과 음악에서, 음식과 분위기로. 언제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골목이 계속 누군가를 불러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신당동은 만나러 가는 곳이었고, 만나러 가는 곳일 것이다.
가끔 나이 지긋한 손님이 젊은 손님들 틈에 섞여 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메뉴판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다. 옛날 그 자리에서 무슨 노래가 흘렀는지, 어떤 사연이 소개됐는지를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다. 그 기억은 말로 설명되지 않아도 골목 공기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새로 온 손님들은 그 공기를 모른 채로 마시고, 언젠가 자신도 그 공기의 일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