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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을 먹는 자리

광장시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의도는 공동체였고, 결과는 생존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백 년을 이어온 일은 먹는 것뿐이다.

alleymag.
발행
2026.09.08
골목
광장시장
백 년을 먹는 자리
SCENE 01 : 입구에서 만나는 시간
▲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88 · 2026.08 / 사진 taksbloglife · https://blog.naver.com/taksbloglife/224392873461 광장시장의 입구를 포함한 전경. 오래된 간판과 새로운 표지판이 겹쳐 있는 장면에서 시장의 오랜 역사가 읽힙니다. 여러 세대가 이곳을 지나왔습니다.

광장시장의 이름은 두 다리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광교와 장교 사이에 이 시장을 지으려던 계획이 있었고, 두 다리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광장이라 지었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의 토목 기술로는 큰빗소리를 견디지 못해 배오개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다리 이름을 따서 시장 이름을 지으려 했다는 것부터가 흥미롭다. 물길을 건너는 자리, 사람이 오가는 자리에 시장을 두려 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결국 물길을 견디지 못해 자리를 옮겼지만, 두 글자로 압축된 그 처음의 구상은 이름으로 남았다. 실패한 계획이 이름으로 살아남은 셈이다.

1905년 문을 연 광장시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그것이 생기게 된 이유는 간단하지 않다. 을사조약이 맺어진 뒤 일본의 경제 침략에 맞서려는 국권 회복의 염원에서였다고 전한다. 서른세 명의 발기인이 나서 토지를 마련하고 현금을 모아 시장을 세웠다.

시장의 시작은 저항이었다. 침략에 맞서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장을 보는 것을 택했다. 그것이 백 년이 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계속 모여 계속 장을 본다.

장을 보러 나온다는 것은 그저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쌀을 사러 나왔고 누군가는 옷감을 사러 나왔지만, 그 발걸음이 모여 하나의 힘이 되었다. 이웃이 이웃의 물건을 사고, 그 돈이 다시 이웃의 살림이 되는 순환. 서른세 명의 발기인이 그리려 했던 그림은 아마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혼자 하는 장사가 아니라 함께 도는 살림이었다.

같은 자리에서의 반복

서울의 많은 시장들이 그렇듯이, 광장시장도 여러 번 위기를 겪었다. 대형마트가 생기면 죽는다던 시장들이 사라지거나 축소되었다. 하지만 광장시장은 남았다. 아마도 그것은 습관의 문제일 수도 있다. 백 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다 보니, 그것이 없어지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습관이라는 말은 가볍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무게가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같은 재료를 손질하고, 같은 자리를 지키는 일. 그것을 몇 달이 아니라 몇십 년, 몇 세대에 걸쳐 반복한다는 것은 의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반복 자체가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습관이 무너지지 않는 한, 그 자리도 무너지지 않는다.

광장시장에서는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아침에 시장이 열리고, 녹두를 맷돌로 갈고, 육회를 썬다. 그 과정은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같다. 기계화가 진행되고 포장 방식이 바뀌었지만, 손으로 하는 일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의 시장은 소리로 먼저 열린다. 셔터가 하나둘 올라가고, 짐을 옮기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어느 가게에서는 벌써 맷돌이 돌기 시작한다. 손님이 들어차기 전, 상인들끼리 나누는 짧은 인사와 잡담이 골목을 채운다. 그 조용한 준비의 시간이 없다면 낮의 북적임도 없다. 백 년 동안 이 순서는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SCENE 02 : 반복되는 일의 현장
▲ 2026.06 / 사진 skawjddl23 · https://blog.naver.com/skawjddl23/224311945072 60년 잡할머니 좌판에서 해산물을 다루는 손과, 옆 가게에서 나물을 계속 포장하는 손입니다. 손님이 몰리기 전 이른 시간에도 손은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지키려고 만든 것이 지켜낸 것

광장시장을 만들 때의 의도는 명확했다. 공동체다. 함께 장을 보는 사람들이 만드는 경제. 그것이 개인의 장사보다 강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실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 의도는 백 년 동안 계속 되살아났다. 서른세 명의 발기인들이 모여 백 년을 지켜낸 것이다.

공동체라는 말은 지금 들으면 낡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이 뜻했던 것은 단순했을 것이다. 혼자 버티지 않는다는 것. 옆 가게가 잘되면 내 가게도 손님을 나눠 받고, 옆 가게가 어려우면 그 자리를 대신 지켜주는 관계. 그 관계는 백 년을 지나며 조금씩 형태를 바꿨겠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지금도 시장 안에서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상인들을 볼 수 있다.

손이 계속 움직이는 자리

광장시장의 이름을 나누는 것은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음식들이다. 맷돌로 녹두를 갈아 만드는 빈대떡. 기름에 부쳐지는 연기와 함께 노릇해지는 모습. 그 과정은 백 년 동안 거의 같다. 기계로 갈 수도 있지만, 손으로 맷돌을 돌린다. 그것이 이 시장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시장에서는 육회를 손으로 썬다. 고기를 대하는 방식, 칼을 다루는 방식, 손의 각도. 그 모든 것이 기술이고 경험이다. 시간이 흘렀어도 그 기술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손의 모습 자체가 시장의 가치가 되었다. 사람들은 음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드는 과정을 사는 것이 되었다.

손으로 하는 일에는 실수가 따른다. 맷돌의 힘 조절을 잘못하면 반죽이 거칠어지고, 칼의 각도가 어긋나면 결이 흐트러진다. 그 실수를 줄이는 방법은 반복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몇 년이고 계속. 그렇게 쌓인 반복이 지금 시장에서 보는 손놀림이 되었다. 배우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수록, 그 손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백 년 동안 장을 보는 사람들이 계속 왔다. 가난했을 때도, 잘살 때도, 전쟁 때도. 그 모든 시간에 이 시장은 서 있었다. 의도한 저항이 우연히 생존이 되었고, 생존이 의도한 보존이 되었다. 지키려고 만들었던 것이 실제로 지켜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계속되는 손의 움직임이다.

그 백 년 사이에 이 골목을 스쳐 간 얼굴은 셀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얼굴은 몇 번 오고 다시 오지 않았고, 어떤 얼굴은 평생을 드나들었다. 시장은 그 모든 얼굴을 기억하지 않지만, 얼굴들이 남긴 발걸음의 흔적만은 골목 바닥에 고스란히 쌓였다. 지금 이 자리를 밟는 사람도 그 흔적 위를 걷는 셈이다.

시장이 살아남은 이유가 모두 고풍이나 감성 때문은 아니다. 가격 때문이기도 했다는 사실 또한 함께 기억해야 한다. 백 년 동안 시장에서 사는 것이 다른 곳에서 사는 것보다 쌌다. 시간이 흘렀어도 그 기본은 변하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리가 시장이고, 그런 자리가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는 말해야 할 필요가 없다.

싼 것과 좋은 것이 함께 있다는 사실은 당연해 보이지만 흔치 않다. 대형마트는 균일한 품질을 약속하지만, 그 균일함에는 값이 따른다. 시장은 다르다. 가게마다 맛이 다르고 값도 조금씩 다르다. 그 편차 안에서 손님은 자기가 좋아하는 자리를 찾아간다. 그 선택의 여지가, 결국 시장을 계속 찾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광장시장은 지키려고 만든 시장이 실제로 지켜낸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계속되는 생존이다. 같은 자리에서 백 년을 장을 보는 사람들의 습관. 그것이 가장 강한 보존이다.

다음 백 년도 같은 방식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 답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내일 아침에도 문을 여는 사소한 반복 속에서 나올 것이다.

SCENE 03 : 저녁의 명물 간식
▲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88 · 2026.08 / 사진 taksbloglife · https://blog.naver.com/taksbloglife/224392873461 튀김과 완자가 김을 내며 진열대를 채우고 있습니다. 저녁 조명 아래에서도 좌판은 쉬지 않고 채워집니다.
SCENE 04 : 시장 입구와 빈대떡 부치는 손
▲ 사진 공공누리 한국관광공사 ·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132183 위: '광장시장 KWANG JANG MARKET' 간판이 걸린 시장 정문 외경으로, 백 년 넘은 전통시장의 얼굴이다. 아래: 철판 위에서 노릇하게 부쳐지는 빈대떡을 뒤집는 모습으로, 광장시장 먹자골목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광장시장의 개설 연도와 역사, 지명의 유래는 위키백과와 한국문화정보원의 공개 자료에 따른 것이다. 시장의 음식과 운영 방식은 2026년 여름과 초가을에 확인한 방문 기록에서 반복해 나타난 서술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광장시장종로구시장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