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의 손이 줄어드는 언덕
창신동의 봉제공장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것은 옷을 안 만들어서가 아니라, 만드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창신동 문구완구거리



창신동의 봉제공장들이 빠른 속도로 문을 닫고 있다. 1970년대 삼천 개에서 지금 천 개로 줄었으니, 감소의 속도를 제대로 감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동네를 걸을 때마다 낯선 빈자리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는 있다.
소비자들은 옷의 태그를 볼 때 원산지를 확인하지만, 그 옷이 어느 골목의 어느 손에서 만들어졌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창신동에서 만든 옷과 다른 어딘가에서 만든 옷을 눈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손의 흔적은 옷감 안쪽 깊숙이 숨어 있을 뿐,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골목의 노동은 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것이 '산업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옷은 여전히 만들어진다. 하지만 서울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신 다른 나라에서 더 싼 임금으로, 더 빠르게 만들어진다. 창신동에서 손으로 만들 이유가 사라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동네에 문구와 완구를 파는 가게들이 자리잡은 것도 사실 오래된 일이라는 점이다. 동대문 문구거리는 1960년대에 이미 생겨나 국내 학용품 유통의 중심지 노릇을 해왔다. 봉제와 문구는 한 세대 차이로 이 언덕에 나란히 자리를 잡은 셈이다. 옷을 만드는 손과 학용품을 유통하는 손이 오랫동안 같은 골목에서 공존해 온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변화는 완전히 새로운 것의 침입이 아니라, 원래 있던 두 산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과정에 가깝다.
남은 것의 무게
천 개의 공장이 이 좁은 언덕에 남아 있다. 그들은 종종 '기술력 때문에 남았다'고 말해진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이미 여기 있고, 사람이 있고, 기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옮길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다.
창신동의 공장들은 대부분 가족이 운영한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아들이 잇고, 그 아들의 세대가 이제 일을 넘겨받을 나이다. 가업으로서의 봉제는 육체적으로 부담스럽다. 그래서 일부는 계속하고, 일부는 다른 일로 바꾼다.
오래 운영해온 공장의 내부를 보면, 건물은 낡았지만 기계들은 정성스럽게 관리되고 있다. 작업대 위의 물건들이 정렬되어 있고, 도구 하나하나가 제 자리에 있다. 그것이 얼마나 오랜 시간 같은 일을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수십 년을 일했으니 만들어낸 옷은 수백만 장이 될 것이다.
골목의 도매점 중 한 곳에 들어서면 나무로 된 천장과 선반이 가득 들어차 있고, 벽에는 오래된 영화 포스터와 빛바랜 포장지 같은 소품들이 붙어 있다. 몇십 년째 자리를 지킨 가게 주인의 취향이 그대로 쌓여 있는 공간이다. 이런 가게는 단순한 도매점이 아니라, 한 사람의 기억이 층층이 쌓인 작은 박물관에 가깝다. 봉제공장의 정돈된 작업대와, 이 취향으로 가득한 도매점 선반은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오래 한 자리를 지킨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밀도다.
그 옷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의 옷장 속에 있을 것이고,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몸을 덥고 있을 것이다. 만든 것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의 손이 이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 둘 사이의 거리가 창신동의 현실이다.


산업이 떠나갈 때 남은 것들
동대문 의류 산업이 약해질수록, 창신동의 역할도 달라졌다. 전체 의류를 만드는 것에서, 특정 부분만 맡는 것으로. 혹은 수선과 맞춤복 같은 틈새 일로. 산업이 축소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런 일들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오는 것은 문구와 완구다. 동대문 근처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완구거리로 새로운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 동네의 옛 정체성을 지우는 것은 아니다. 봉제의 손과 완구의 소음이 같은 거리에서 울리고 있다.
완구 도매점의 진열대에는 국내외 장난감이 빼곡하게 쌓여 있다. 알록달록한 상자들이 천장까지 닿을 듯 진열된 골목을 걷다 보면, 봉제공장의 재봉틀 소리와는 전혀 다른 활기가 느껴진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부모들, 어릴 적 추억의 물건을 찾아온 어른들. 이들이 만드는 소음은 봉제공장의 기계음과는 다르지만, 이 골목이 여전히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만큼은 같다. 비어가는 골목과 채워지는 골목이 나란히 있는 것, 그것이 지금 창신동의 풍경이다.
산업은 떠났지만 사람은 남았다. 그들이 하던 일을 계속할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이곳을 떠날 이유도 없다. 그 중간에서, 창신동은 천천히 변해가고 있다.
완구거리라고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온라인 쇼핑이 늘면서 직접 도매점을 찾는 발걸음도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새로 들어온 산업도 언젠가는 또 다른 변화를 마주할 것이다. 창신동이라는 언덕은 그렇게, 한 산업이 자리를 잡았다가 흔들리는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지켜봐 온 자리다.


빈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빈 공장 건물들은 때때로 새로운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창작 스튜디오가 되거나, 전시 공간이 되거나, 게스트하우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건물들은 그냥 비어 있다. 임차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서거나, 리모델링할 형편이 안 되어서다.
빈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셔터에 남은 낡은 간판 글씨를 눈여겨보게 된다. 페인트가 벗겨진 자리로 예전 상호의 흔적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누군가 오랫동안 그 이름을 걸고 일했다는 증거다. 지금은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지만, 셔터를 내리기 전까지 그 이름 아래서 누군가는 실을 꿰고 옷감을 잘랐을 것이다.
이 동네를 보면서 '재생'이나 '부활'이라는 말을 쓰기는 조심스럽다. 재생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옷을 만들던 손의 기억이 새로운 것으로 덮이고 있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만 알 것이다.
가족이 대를 이어 공장을 운영해 온 집도 있고, 이제는 문을 닫고 자녀가 다른 일을 택한 집도 있다. 그 갈림이 어느 한쪽의 실패는 아니다. 각자의 형편과 선택이 만든 결과일 뿐이다. 창신동을 하나의 이야기로 뭉뚱그리기보다, 이런 개별의 갈림들이 모여 지금의 풍경을 이룬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창신동을 찾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옛 정취를 느끼려는 사람, 완구를 구경하려는 사람, 그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 이 다양한 이유들이 뒤섞이면서, 산업의 언덕이었던 이곳은 조금씩 다른 성격의 공간으로도 읽히기 시작했다.
골목을 걷는 방문객들도 점점 늘고 있다. 오래된 것을 찾는 사람들, 사진에 담을 만한 풍경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발걸음이 이 동네에 또 다른 방식의 활기를 더하고 있다. 산업의 언덕이 어느새 걷기 좋은 골목으로도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