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옆, 붓끝의 거리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 좁은 골목에는 왜 그림과 시를 쓰는 사람들이 모였을까. 서촌은 권력 가까운 자리에서 권력과는 다른 것을 그리던 동네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9.08
- 골목
- 서촌



서촌을 걸으면 처음 들리는 말은 대부분 같다. 낡은 담장, 오래된 기와지붕, 골목마다 다른 풍경.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언덕을 올라간다. 흰 벽에 걸린 포스터와 그림을 찍고, 나무 문짝을 찍고, 세월의 흔적이 남은 간판을 찍는다. 지금 서촌은 사진의 배경이고 여행객의 목적지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 사이로 골목 안쪽을 걸어가면, 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낮은 담장 너머로 마당이 살짝 들여다보이고, 처마 밑 그늘이 골목을 시원하게 식힌다. 관광객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대체로 비슷하다. 오래된 대문, 색이 바랜 창호, 담장 위로 뻗은 나뭇가지. 서촌을 처음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발걸음을 멈추고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이 골목이 처음부터 구경하는 곳이었던 건 아니다. 서촌은 조선 초기부터 경복궁과 사직단 사이에 자리해 있었다. 왕족이 살았다. 사대부들이 거처를 마련했다. 권력이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동쪽으로는 경복궁, 서쪽으로는 인왕산, 남쪽으로는 사직단 앞길, 북쪽으로는 북악으로 둘러싸여, 이 골목은 권력의 안마당처럼 존재했다.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서촌은 우대, 상대, 상촌이라 불렸다. 모두 웃대를 한자로 적은 이름들이다. 그저 위치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었다. 권력 위의 곳, 그곳의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왕족 사이에 들어온 중인들
조선 중후기로 들어서면서 서촌의 얼굴은 변했다. 왕족과 사대부만 살던 곳에 평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중인들이 눈에 띄었다. 중인은 양반도 노비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의관, 역관, 서기관 같은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신분은 낮지만 글을 알고 한문을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권력의 구조 안에 있으면서도 권력 그 자체는 아니었다. 권력을 보조하지만 권력을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왕족과 사대부의 눈 아래에 살면서, 동시에 그 눈 밖의 것들을 생각할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 여유 속에서 문화가 피어났다. 누상동 백호정, 필운동 등정, 옥인동 등룡정, 사직동 대송정, 삼청동 운룡정을 묶어 서촌오처사정이라 불렀던 활터들이 그 흔적이다.
중인들의 문화 활동은 활을 쏘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림을 그렸고, 글을 썼고, 만들고 창조했다. 권력의 중심부에서 조금 비껴난 그 자리에서, 권력이 허락하지 않는 것들을 그릴 수 있었다.
활터가 있던 자리, 그림을 그리던 방, 글을 쓰던 마루. 지금은 대부분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자리에 새로 들어선 카페와 갤러리들이 묘하게 그 역할을 이어받은 듯 보인다. 권력의 옆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던 사람들의 자리에, 지금은 또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진경산수의 자리
인왕산을 실제로 마주하고 서면, 정선이 왜 그 산을 그렸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바위의 결과 소나무의 굽은 가지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림 속 풍경과 눈앞의 풍경을 번갈아 떠올리는 순간, 몇백 년의 시간차가 잠깐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조선 회화의 거장 정선은 진경산수로 알려져 있다. 진경산수란 눈에 보이는 실제의 산수를 그린 그림이다. 당시 조선 화단에서는 중국의 옛 그림을 모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정선은 인왕산을 그렸고, 북한산을 그렸고, 지금 보이는 경복궁 너머의 산들을 그렸다. 가상이 아니라 현실을 그린 것이다. 권력이 선호하는 가상의 중국 풍경 대신, 서민들이 매일 보는 서울의 산을 화폭에 담았다.
정선이 서촌에 살았을 때, 그는 인왕산 자락의 바위와 소나무를 그렸다. 집 밖을 나가면 보이는 것들을 그렸다. 그 그림들은 권력자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때로는 불경건한 것으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권력 옆에 있으면서도 권력이 아닌 것을 그릴 수 있는 자리, 그게 서촌이었다.
김정희의 추사체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서예의 거장이 남긴 글씨는 권력의 선호를 따르지 않았다. 중국 금석학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방식을 개척했다. 전통을 따르면서도 전통을 깨는 것, 그것을 할 수 있는 곳도 서촌이었다.
현대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화가 이중섭이 서촌에서 지냈고, 시인 윤동주도 이곳 골목을 걸었다. 권력의 중심부에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그 중심을 볼 수 있는 자리. 문학과 미술의 거장들이 찾아온 곳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중섭이 걸었을 골목과 지금 관광객이 걷는 골목은 같은 자리다. 다만 그때는 가난한 화가가 사람들 눈을 피해 다니던 길이었고, 지금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 걷는 길이 되었다. 같은 담장, 같은 기와지붕 아래를 지나면서도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럼에도 이 골목이 예술가들을 끌어들였던 이유, 권력 옆에서 조금 비껴난 자리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골목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본 풍경에는 늘 같은 요소들이 있다. 낮은 지붕선, 좁은 담장 사이 그늘,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몇백 년 전에도 이 골목을 걷던 사람들의 발걸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향하던 곳과 지금 사람들이 향하는 곳이 달라졌을 뿐이다.
사는 곳에서 보는 곳으로
지금 서촌 골목에는 무엇이 들어서 있는가. 카페와 갤러리, 독립서점과 에스프레소 바가 공존한다. 옛날 주택을 개조한 한옥 카페들은 한옥 분위기와 빈티지 가구를 섞어놓았다. 기존 한옥의 나무 기둥과 서까래, 창호 등의 요소는 고스란히 남겨두고, 테이블과 현대적 조명이 더해졌다. 방문객들은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공존하는지 구경한다. 이 골목은 사는 곳이 아니라 걷고 보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여전하다. 여전히 권력의 옆에 있고, 여전히 그곳에서 뭔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 들어선다. 예전의 예술가 대신 이제는 셰프와 바리스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들도 같은 일을 한다. 경복궁 바로 아래에서, 권력이 아닌 것을 만들고 있다. 손님들은 경복궁의 영추문을 창밖으로 바라보면서 차를 마신다.
서촌은 변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정선과 김정희, 이중섭과 윤동주가 찾던 그 자리, 권력 옆에서 권력과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자리는 여전하다. 지금은 그것이 무엇인지만 달라졌을 뿐이다.
지금 이 골목을 걷는 사람들 중 몇이나 정선과 김정희를 떠올릴지는 알 수 없다. 대부분은 그저 예쁜 카페와 오래된 담장을 보러 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몇백 년 전 중인들이 활을 쏘고 그림을 그리던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권력 옆에서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자리는, 이름을 바꿔가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